문해력 Thinking Is Becoming a Luxury Good

Thinking Is Becoming a Luxury Good
오랜만에 문해력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나는 요즘 의식적으로 책 읽기를 습관화 하려 노력하고 있다.
6월부터 시작을 해서 지금은 제법 책 읽는 근육이 붙은 것 같다.
가벼운 책부터 시작했고, 이제는 퇴근하고 운동을 한 뒤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는 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스마트폰과 연결된 매체들이
빼앗아가는 우리들의 주의력, 문해력에 관한 이야기인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기사의 끝으로 갈수록 문해력을 넘어선 더 큰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무서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읽는 행위’를 좋아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 버스 안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 항상 책을 읽었었고,
재밌는 책은 밤을 세워서 읽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었는데,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로는 어느새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일, 책을 구입해서 읽는 일이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
뭔가 벽에 부딪힌 것 같이 막막할 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는 언제나 나의 선택은 책 읽기였다.
그러한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일상에서 책 읽는 행위는 뜸해졌고,
한 권을 읽고 나서 다시 새로운 책을 바로 읽기 시작하는 일도 줄었었다.
그래도 3-4년 정도는 제법 꾸준히 책을 읽어오고 있다.
하지만 성인인 나도 스마트폰의 중독에서 나오기가 힘들다.
연신 울려대는 알람과 좋아요를 신경 쓰고 책을 읽다가도 알람이 오면 그걸 확인하다가 책 읽는 흐름이 깨져서
결국엔 책을 덮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책을 읽을 땐 폰을 저 멀리 둔다.
가끔씩은 남산에 가서 혼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멍 때리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여자 혼자 남산에 앉아있으면 정말 많은 아저씨들의 방해를 받는다. 고요함을 즐기고 싶어도 즐길 수 없어 당분간 스탑)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 내가 혹시 놓치는 게 있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소화하지도 못할 정보/이야기들을 머리 속에 가득 담았다가, 그 안에서 제멋대로 섞여서 뭐가 뭐였지, 기억도 못하는 일들이 태반이다.
삶의 방식과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나의 태도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이 기사를 읽게 되어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더 많이 읽을 것,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질 것,
세상의 모든 정보들 소식들에 연연하지 말 것,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도 유연하게 살아갈 것
기사의 내용 중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얼마 전에 썼던 AI툴에 대한 푸념 글의 내용처럼
나는 내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라서 행복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지 않은 계층이 성인이 되면서 만들어가는 세상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음식을 넘어 문해력에서 마저 부익부빈익빈이 나타난다.
읽기 능력, 문해력, 인지적 사고가 부, 권력을 쥔 자들만의 전유물이 된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고, 갈수록 스마트 폰에 의존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세상의 전부라 믿고 산다면…
이미 전 세계가 유튜브를 이용해 정치를 하고, 그 것을 맹신해서 거리로 뛰어나오고 있다.
이전에 읽었던 글 중에서 미래 사회에서는 가난할 사람일 수록 가상 공간, 온라인에서 머물게 되고
부자일수록 오프라인의 실제적인 공간을 누리고 살 거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뭔가 이어져 있는 느낌이다
분명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미래가 아니 현실이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 스스로도 그러한 함정에 빠져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보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비판적 사고가 더 필요한 세상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생각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