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 2 : 여행지에서 친구 사귀기 – Enrico

내가 왜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지에 대해 묻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영어 공부를 한 보람이 가장 클 때가,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가 아닌가 싶다. 영어를 한다는 이유 한 가지 만으로도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이 정말 많다.

2009년이었다. 일주일 간의 휴가를 받아 더블린에서 런던-파리 혼자 여행을 갔다.

혼자 여행 : 런던의 18인실 호스텔에서 만난 인연.

돈이 없던 어학연수생 시절이라 숙소는 무조건 저렴하게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런던의 한 호스텔, 그 중에 가장 저렴한 방은 18인실 혼성 도미토리였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선 순간, 3층 침대 높이에 기가 죽었고, 혼성이라는 점 때문에 최대한 구석에 자리 잡고 싶었다.

침대 커버와 베개 커버를 들고 벽에 마주한 침대로 가는 순간, 상의를 탈의한 하고 밑에는 샤워 타월로 가린 한 남자가 인사를 건냈다.

이탈리아에서 온 Enrico였다. 나는 한국에서 왔지만, 지금은 더블린에서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니,

태권도를 할 수 있다며 그렇게 이야기를 텄던 것 같다.

첫 날은 그렇게 가볍게 인사로 끝이 났고, 그 뒤로 호스텔에서 움직이면서 마주칠 때 마다 눈인사를 했다.

그러다 3일 차 아침을 먹는데, 엔리코가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냐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 날이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이고, 새벽에 파리로 넘어가는 비행기라 공항에서 몇 시간 노숙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엔리코는 공항까지 같이 배웅을 해주겠다고 했고, 우리는 저녁 6시 정도에 호스텔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그 날 낮에 예정되었던 일정을 마치고, 짐을 가지러 숙소에 복귀한 나는 6시가 다가오자, 과연 엔리코가 기다리고 있을까 의심을 했다.

당시에는 따로 연락할 방법도 없었기에 6시가 되었는데 안 나타나면 혼자서 공항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에 맞춰서 엔리코는 나타났고 우리는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헤어드레서인 엔리코는 미용학원(?)을 찾기 위해 런던에 온 거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나의 다음 일정을 파리에서 5일이었고, 4일 뒤에 엔리코는 더블린으로 가는 일정이라서

우리는 이메일 주소를 주고 받았고, 그 다음주에는 더블린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파리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더블린에서 다시 만났다.

주말에 마침 아르헨티나 친구의 하우스 파티가 있어서 같이 가서 파티를 하기도 했고, howth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howth castle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달려서 아무 곳이나 들어갔는데, Dublin transport Museum이었다.

박물관 휴무일 이었는데, 비를 피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 관리자 아저씨가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줘서

아무도 없는 박물관을 둘만 구경을 했던 재미난 기억도 있다.

본인 호스텔에서 저녁을 만들어서 준다고 초대를 했다. 이탈리아 사람이니 요리를 잘하겠지 생각하고 엄청 들떠서 갔는데,

테스코에서 사온 듯한 냉동 라자냐를 내어주어 둘이서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탈리아 사람이라곤 믿지 못할 정도로 축구에도 관심이 없어서, 너는 진짜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며 농담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난다.

4일정도의 일정으로 그동안 우리는 꽤 많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언제나 만남에는 끝이 있는 법, 엔리코는 이탈리아로 돌아갔고,

우리는 페이스북으로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다시 10월에 더블린에 놀러왔다. 런던에 호스텔에서 만났던 인연이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던 것이 신기했다.

그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엔리코는 파트너와 함께 3명의 아이들을 낳았고, 헤어 드레서를 그만두고 지금은 가죽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가끔씩 연락을 하면, 엔리코는 정말 많은 말을 쏟아낸다. 그 친구의 메세지에서 읽을 수 있는 건, 어린 날의 자유인 것 같다.

자신의 가족을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동시에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이 느껴지는 감정이 종종 읽히곤 한다.

이전에 엔리코가 더블린으로 왔을 때, 버거킹 영수증 뒤에 적어준 것이 있었다.

엔리코가 그려준 비첸자 이탈리아

다음 번에는 꼭 자기가 살고 있는 비첸자에 놀러 오라는 것. 이렇게 이탈리아 지도를 그려서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설명해줬다.

비첸자를 방문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몰랐는데, 수 백개의 메세지를 주고 받고 서야 올해 여름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주 목적은 루카에서 열리는 친구의 결혼식을 가는 것이지만, 루카를 가려면 피사나 피렌체로 비행을 해야하는데, 직항이 없고,

환승 시간도 너무 애매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밀라노로 직항을 타고 가서

기차를 타고 밑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을 짜며 엔리코가 생각이 났다.

사실 2023년에 아일랜드에서 일정 후 이탈리아를 가기로 결정했을 때도 방문하려 했지만,

23년도 당시에 나의 계획은 이탈리아 남부였고, 로마로 아웃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비첸자까지 가기엔 무리라서 방문을 하지 못했었다.

15년 정도 됐을까, 드디어 우리는 올 여름 다시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렸을 때 우리 모습과는 많이 달려져 있을 거고,

다시 만났을 때 느낌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15년 전에 만난 인연이, 이렇게 돌아 다시 만나게 되는 경험이 귀하다. 그동안 못 나눈 대화들과, 엔리코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마주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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