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요즘 이야기 (전세계약, 디자인 챌린지)
- 민달팽이의 서러움
내년 2월이면 전세계약이 만료된다.
지난 주에 집주인이 연락이 와서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했다.
1000만원을 부르더니 갑자기 1500만원을 부른다.
이사하기도 귀찮고 주변 시세보다 싼걸 알아서, 그렇게 하겠다고하고 1월 말에 만나서 계약서를 쓰기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5분 뒤 다시 전화가 온다.
부동산에 이야기 했더니 부동산에서 “그렇게하면 그 집 못팔아 드려요. 최소한 4천은 올리셔야죠.”라고 했단다.
그리고 집주인 아줌마는 나에게 그 집을 살 마음이 없냐고 물어봤다.
어찌저찌 서로 아옹다옹하다가 3천만원을 올리기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동안 집 매매에 대한 생각이 내 속을 시끄럽게했다.
나 혼자 살기엔 적당한데, 이 동네에서 이 집이면 괜찮은 시세이긴한데
내가 살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와서 매매를 하면 괜히 아까울 것 같기도 하고…
대출 조금 받으면 살 수 있는 가격이라 더 흔들렸는지 모른다.
내 삶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작지만 내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15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증액된 보증금.
4000만원이면 한 사람의 연봉일텐데, 한꺼번에 4천만원을 올리라고 부추긴 부동산이 참 미웠다.
그러다가도 이내, 내가 배고팠던 시절,
쉐어 하우스에서 정말 3평도 안되는 공간에서 살았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니
대출은 끼겠지만 내 집을 마련할까? 라는 생각을 하는 지금을 보니,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려보니 까마득하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은 매일 매일을 감사 기도로 시작하고 마무리해도 부족할 정도로 풍족하다.
정말 부자인, 아니면 능력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라겠지만,
아직도 매 달마다 내 통장에 월급이 찍히는 것이 신기하다.
그러면서도 언제까지 일을 하며 근로소득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동시에 들기도 한다.
어쨌든 결론은,
주어진 공간에서 주어진 시간만큼 행복하게 머물고,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서 언젠가 내가 원하는 공간을 마련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 챌린지 완료
100일 챌린지 수료증이 왔다.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도전했던 디자인 100 챌린지.
아파도 술을 먹어도 아침에 일어나서 과제를 하고 인증했던 기억이 난다.
100일은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 ‘나와의 약속’이기 때문이었다.
챌린지를 시작하기 전에 내 스스로 했던 약속.
나 혼자만의 약속이기 때문에 깨기도 쉽고, 약속을 어긴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이 악물고 도전했던 것 같다.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성실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빠르지 못하고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은 꾸준함과 성실함이라 생각했다.
이 챌린지를 하면서 얻은 게 생각보다 많다.
디자인 공부는 물론이고, 내가 몰랐던 현장 실무의 부분을 배웠다는 점.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꺾고 책상에 앉아서 과제를 해가면서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하루가 모여서 한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그 프로젝트 7개가 모여서 내 포트폴리오가 되는 과정을 보며 희열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작은 행위들이 나를 만들고, 내가 단단해지게 도와주고, 내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해줬다는 것이 내가 얻은 것들 중 가장 큰 부분이다.
자 하나를 끝냈으니, 다음은 무엇을 해볼까?
- 병원
병원을 갔다왔다.
아빠가 다녔던 병원은 강남 성모병원, 내가 간 병원은 여의도 성모병원.
규모의 차이는 있었지만, 알림 문자나, 환자 카드 등 전반적인 것이 비슷해서 아빠와 함께 병원을 드나들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빠가 했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는 나.
채혈실 앞에서는 아빠의 외투를 들고 기다리던 나였는데, 접수표를 받고, 내 이름이 불리고 채혈을 하는 것을 직접하니 느낌이 묘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환자들과 간호사들의 대화 소리. 휠체어, 베드가 지나가는 소리들을 들으니 괜히 심란했다.
나는 간단한 수술로 오는 거라 부담감이 없었는데,
아빠는 두 번이나 다른 암으로 병원을 오간 건데, 서귀포 집을 나서면서부터 어떤 기분이었을까,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 자체가 겁이 나지 않았을까…
엑스레이를 찍으려 대기하고 있는데, 내 앞에 환자분이 아빠의 또래처럼 보였다.
‘아빠 보는 것 같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모니터를 보니 환자분 연세가 96세셨다.
정정하게 혼자 걸어 다니시고 의사소통도 무리없이 하는 걸 보고 경외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너무 빨리 가버린 아빠가 야속하게도 느껴졌다.
아빠가 많이 생각났던 하루.
다시는 병원 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내 발로 직접 여기 와서 수술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건강이 최고다. 수술을 끝으로 다시는 병원에 올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